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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날, 모든 순간

호주에서 보내는 첫번째 편지... (201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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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번에 온지 이제야 겨우 일주일이 지나갑니다. 오늘로 두번째 맞는 토요일이네요.

한동안 기숙사 방에서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방에서는 인터넷을 못하고 학원이나 도서관을 가서 와이파이가 될 때만 간간히 사용했었는데 드디어 어제 돌아와보니 연결이 되더라구요. 오자마자 이게 안돼서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아직 서툰 영어로 그 덕분에 현지인과 통화도 자주하고 리셉션에 컴플레인을 몇번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몇분 사용도 못하고 다시 인터넷이 먹통이 돼 아직 해결이 잘 안되는 걸 보니 아직 제 영어가 많이 서툴긴 한가봐요. 사용량이 적으면 할 수 있는지 12시가 넘으니 연결이 다시 되었습니다. ( There, Here 로는 잘 통하지 않네요. )

 

 

잘 지내시죠? 한국은 많이 덥나요?

여긴 분명 점점 추워진다고 들었는데 전 비가 자주 온다는 것만 빼면 아침나절에만 잠시 쌀쌀한 거 같고 가을 바람과 뜨거운 햇살이 무척이나 마음에 듭니다. 물론 그 햇살이라는게 정말 직사광선을 쬐면 너무 밝아서 눈이 시리지만요. 그래서 항상 후드와 모자를 뒤집어쓰고 다녀요. 실은 어제 도서관에서 문득 전날 바로잉을 읽다가 잠든게 생각이 나 메일을 한통 보내려고 이렇게 거의 다 썼는데 그때 베터리가 나가서 저녁에 기숙사에 돌아와 다시 메일을 썼다가 다시 인터넷이 먹통이 돼 지금 이렇게 또 다시 밤에 세번째 시도만에 보내게 됐어요. 대부분의 공공시설은 와이파이 환경이 잘되어있지만 워낙 넓어서 잘 터지지는 않고 제 기숙사는 공용 와이파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이 그냥 자신의 방에 있는 선에 모뎀을 별로로 사서 개인적으로 이용해야 하더군요. 그것도 2GB 이상 사용하게 되면 사용료를 따로 지불해야하구요. 덕분에 스마트폰 모바일 데이터 무료 사용량 500mb가 벌써 10mb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안부 메일을 보내며 넋두리를 늘어놓고 보니 예전에 중학교때 학원 선생님과 주고 받던 때 이후로 10여년만이라 느낌이 새롭네요.

메일을 보내니깐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아주 긴 사적인 만남" 이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제목이 정확한지 기억이 잘 안날만큼 읽은지 오래됐지만요. 루시드폴이라는 화학공학박사이자 가수가 유학시절, 의사이자 시인이면서 재미교포인 마종기의 시를 보고 공감해서 서로 안면도 모르는 사이에 안부 인사로 보낸 메일을 시작으로, 긴 시간 한달에 한 두번씩 메일을 주고 받은 내용을 이후에 책으로 엮은 건데요. 루시드 폴을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더 재밌게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성적인 연구를 하는 감성인들의 다방면으로 하는 대화가 제법 읽을만 합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있어서 어떨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한텐 분명 어려운 부분도 많았던 책이기도 했어요. ^^; 동시에 뭔가 거들먹거리지 않는 느낌이 드는 그들의 소통이 마음에 들기도 했습니다.

 

 

여기는 사람들이 아침일찍부터 꽤나 부지런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심하다 할 정도로 느긋해요. 제방의 인터넷 불통이 그 한 예가 되겠네요. 또 금요일은 주립도서관이 5시까지 하는 줄도 모르고 앉아있다가 쫒겨났는데 어디로 가야하나 방황하는 저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은 그냥 로비의 바닥이나 계단에 걸터 앉아 컴퓨터를 사용하더라구요. 저도 그렇게 잠시 섞여 있다가 베터리가 나가서 숙소로 돌아왔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은 사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금방 지났어요. 처음보는 도시에서 처음보는 것들이 많아 어떻게 지내야 하나 사실 막막하기도 했었습니다. 다닥이 붙어서 블록 블록으로 나눠진 투박한 큰건물들이 늘어선 서양식 길도, 마치 지하철처럼 지하로 내려가는 인터체인지에서 스크린도어를 통해 탑승하지만 다음 정류장이 어디인지는 방송해 주지 않는 (허리가 구부러지는) 버스도 많이 당황스러웠는데 일주일이 지나고보니 좀 익숙해진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주로 다니는 길뿐이지만요.

생활과 여행은 많이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생일이 지나지 않은 만으로 25년만에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거임에도 나름 잘 적응하고 있는거 같아요. 저녁마다 운동장에서 함께 운동을 하는 쌍파울로에서 온 줄넘기를 참 못하는 두 친구와 좀 말을 섞으며 지내고 있고 (저보고 줄넘기는 대체 언제부터 시작한 거냐고 물어보는) 또 비록 인스턴트지만 나름 든든하게 저녁도 잘 챙겨먹고 있구요, 아직은 쉐어하는 주방에서 요리해 먹을 엄두는 안나네요.

매일밤 뉴스룸이라는 미국드라마를 한편씩 보고 있는데 내용도 좋고 메시지도 좋은 드라마라서 다음주엔 다시 돌려보며 좋은 표현들을 익혀보려고 합니다. 몇번씩 봐도 안질릴 것 같은 내용이니 혹시 못보셨다면 연준님도 꼭 보시길 바라요, 강요하는 건 아니구요. 이런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작은 호감이 생겼어요. 이전에 싫어했다는 말은 아니고, 그냥 전 늘 미국 시트콤만 보며 말장난 하는 것만 즐기기만 했었는데 이런 재미를 주기도 하는구나 하는 기분좋은 충격이었습니다.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참 재밌게 봤어요.

 

물론 뭐 엄청 잘 지내고 있다고만 할 순 없겠네요, 지난 화요일엔 가족들에게 전화 한통씩 돌리다가 어머니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렇게 목이 메이고 울컥해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끊었거든요. 엄마밥이 벌써부터 먹고 싶고, 품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거 같아요. 절약과 동시에 다이어트를 한다고 1일 1식 비슷한걸 다시 시작해서 이기도 할거 같구요. 뭐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여긴 브리즈번 시티에서 3존에 위치한 웨스트 필드 가든시티라는 종합 쇼핑몰에서 걸어서 15분 떨어져있는 유니리조트입니다. 가까스로 다시 인터넷이 잘 잡혀 이렇게 첫 메일을 보냅니다. 생각보다 훨씬 길어졌네요. 아마도 세번째 시도라서 그런지 저의 첫 일주일이 모두 담긴 거 같아요. 내용 저장해서 남겨 뒀다가 오면서 했던 다짐들이 무기력해지지 않도록 나중에 블로그에 포스팅도 하면서 두고두고 봐야겠습니다. 매일 일기를 쓰고 있지만 또 다른 느낌이네요. 이런 목적으로 메일을 쓰기 시작했던 건 아니었는데 일주일동안 할말이 많았나 봅니다. 아마 메일 온걸 보자마자 한숨 쉬실지도 모르겠네요. 얘는 이걸 나보고 읽으라는 건가 하면서요 ㅋㅋ

또 이렇게 또 종종 메일로 인사드릴게요.

주말 잘보내시구요, 주중으로 매일 출퇴근하시면서 찾는 작은 기쁨들 생기면 또 들려주세요.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런 끝 인사도 농담처럼 들리는 긴 메일이었어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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