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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잃어'버린 것일까, '잊어'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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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이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엄마를 잃어버리다. 처음 드는 생각은 이랬다. 엄마란 존재를 어떻게 잃어버릴 수 있지?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잃어버렸다던 엄마는 알고 보니 소설 속 “엄마”에서 나의 “엄마”로 전이되는 느낌을 받았다. 희생만을 자처하시는 어머니, 이 소설은 어머니에 대한 모든 자식들의 원죄의 이야기라고 말한 가수 이적의 서평이 가슴에 와닿았다. 1년 전에 읽은 이 책을 책상 밑 작은 책장에서 다시 꺼내 읽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감동의 여운이 아직 가슴에 남아있는지 책을 펴는 순간 울컥했다.

 

참 재밌는 소설, “나”가 아닌 “너”로 표현하는 주인공의 서술. “나”라는 존재를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여 자신의 부끄러운 죄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듯 한 느낌이랄까. 혹은 모든 시각을 엄마의 관점에서 보려고 했던 노력의 과정이었을까. 굉장히 아픈 이야기고 속상한 이야기다. 작가가 맨 앞에 써놓은 글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 그 자체였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그 의미를 되새기며 나는 조금은 잊혀지고 조금은 닳고 해진 내 무뎌진 마음을 추수리며 다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단락마다 화자가 “너”, “그”, “당신”, “나”로 바뀌면서, 독자는 엄마의 딸이 되었다가 아들이 되기도 남편이 되기도 하면서 엄마와 가족들 개개인 간의 사연과 사랑을 전달 받는다. 또 동시에 그 사랑의 크기도 다르지 않음을 확인한다. 독자 누구나가 그랬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역시 엄마가 화자가 되어 서술한 마지막 부분이 아닌가 싶다. 꼭 찾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음을 안타까워 할 시간을 주지 않고 작가는 들려준다. 딸이 아들이 그리고 남편이 들려주는 “엄마”의 이야기가 아닌 엄마가 들려준 엄마의 인생 이야기 사랑 이야기 그리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엄마의 삶과 가장 닮은 작은 딸에게로 찾아가 자신이 못내 주지 못한 사랑에 죄스러워 하면서 바라보는 엄마가 애달프게 서술하는 부분은 다시 읽어도 눈이 많이 아팠다.

 

모성애란 이름의 엄마의 사랑이란 자식이 없는 나는 아직 범접할 수 없는 사랑의 범위일 것이다. 아니 생리학적으로 10개월을 품을 수 없는 나로선 평생을 가도 알 수 없는 사랑의 범위일지 모른다. 감히 넘볼 수도 없는 크기임을 잘 안다. 이 책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어머니에 대한 나의 한없는 죄스런 마음과 나에 대한 엄마의 무한한 사랑일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 역시 그 크기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슬프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잃어버리지 않게” 엄마를 내 눈으로 내 귀로 다시한번 확인하게 만들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어머니를 괜스레 “엄마”하고 불러보았고 어머니의 대답을 들어보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엄마의 자리, 그것은 비단 자식과 남편을 위해 희생되어진 자리만이 아님을 말한다. 엄마로 살기전의 여자의 인생이, 엄마로 살면서 부터의 엄마의 인생이 이 소설을 더욱 아련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너무 익숙하고 편해서 잊어버리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엄마란 존재는 그리고 가족이란 존재는 잃어버리고 나서 유실물 보관소에서 찾을 수 있는 것 따위가 아님을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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