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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부재’라는 시한폭탄 정이현의 너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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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정말 나 하나도 버거운 세상이다. 나 하나를 감당하고 나의 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를 꾸려나가기도 힘든 세상이다. ‘타인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살피기에는 너무나 빠듯한 것이 현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타인의 삶이라 치부하는 것에는 우리 가족들의 삶도 있는 것은 아닐까?

 

정이현의 <너는 모른다>는 한번쯤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너무나 쉬운 질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선뜻 답하기 힘든 질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눈, 코, 입 생김새가 아닌 그들의 사연과 가족들 개개인이 안고 있는 문제, 우리의 아버지가 밖에서 어떤 업무를 주로 보며 어떤 일로 요즘 고민하며 스트레스를 받는지, 자신의 동생이 요즘 누굴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우리는 서로에 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여기 그 이야기가 있다. 현대의 가족이 안고 있는 본연의 문제, 바로 ‘소통의 부재’라는 문제를 시작으로 소설은 그 심지에 불을 붙인다.

 

<너는 모른다>는 프롤로그에서 ‘강변의 변사체’라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소재로 시작한다. 추리소설과 같은 의문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독자의 처음 기대와는 달리 방배동 서래마을의 한 재혼 가정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전처와의 사이에서 장성한 아들 혜성과 딸 은성을 둔 소규모 무역업자 김상호와 화교출신의 두 번째 아내 진영옥,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생긴 어린 막내딸 유지의 5인 가족. 새엄마, 이복형제라는 불안한 역할로 관계된 이들은 겉으로는 모자랄 것 없는 부유한 가정일지 모르나, 내면적으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갈등을 안고 줄곧 살아오고 있다. 그나마 이 모래알 같은 구성원들을 간신히 붙들어 매고 있는 것은 물질적인 풍족함. 결코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이 가정의 구성원들이 짊어지고 있는 각각의 사연과 고뇌가 과장됨 없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각 장마다 각자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사연처럼 그들은 함께하지만 따로 사는 이른 바 ‘동상이몽’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이들의 시한폭탄의 스위치가 켜지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그것은 바로 집에서 바이올린 레슨을 받고 있어야 할 막내딸 유지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그 시각 가족들은 다들 저마다의 사정으로 집에 있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유지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혼자 집을 나섰다가 길을 잃은 것일까? 혹시 과외선생에게 유괴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원한관계에 의한 납치? 아버지인 상호는 애를 태우며 납치라 확신하면서도 절대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대신 사립탐정을 고용한다. 한편, 고용받아 주변을 조사해 나가는 탐정 영광은 이 가정의 구성원들이 하나같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딸 은성의 불량한 옛 남자친구의 존재와, 새엄마 옥영의 오랜 연인이자 유지의 친부 밍까지 더해져서 이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 어디에 어린 유지의 행방이 연결되어 있을 것인지 끊임없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 가정의 이야기 하나로 독자는 우리네 사회가 가지는 문제점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한 가정의 소통의 부재로 시작된 작은 심지에 불이 붙으면서 이혼가정에서 있을 법한 애정 결핍과 서로간의 불신에서 비롯된 가정 문제, 여기에 우리사회에 만연한 따돌림 문화, 그네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화교사회에 대한 묘사, 장기매매, 방화, 아동유괴와 같은 범죄문제에 이르기까지 소설(fiction)이지만, 돌아보면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가까운 현실속의 문제라는 것이 이 소설이 가지는 강점이라 생각한다.

딸의 실종이라는 사건 자체는 등장인물들 각자의 눈과 입장에서 서술된다. 아버지, 어머니, 큰 딸, 아들, 아내, 남편, 누나, 언니, 동생, 오빠, 막내라는 한 가정의 구성원이 가지는 수많은 역할의 이름보다는 김상호, 진영옥, 김은성, 김혜성, 김유지라는 이름이 그들을 표현하기에 더 자연스러운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또 그 때문인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가족들이 맺고 있던 황폐한 관계속의 곪아버린 상처를 독자들은 더 절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문제와 동시에 가족이 가지는 결핍들을 다루면서도 추리소설의 형식을 취해 얇은 책이 아님에도 굉장히 빨리 읽히고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진진해진다. 어쩌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가족들의 치부에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반면 극단적인 사건을 겪으면서야 드러난 이들의 치부를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삶을 투영해 보며 몸서리치는 나 자신을 그리고 ‘소통의 부재’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우리의 가족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이 폭탄의 해제 암호가 ‘대화와 소통’이라는 것을 전해 주려는 것이 아닐까. 텔레비젼 앞에 소파위에서가 아닌, 식탁 앞에서가 아닌 눈을 맞추고 서로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진짜 'Communication' 말이다.

 

 

난 여류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들의 필력을 아끼고 그들의 캐릭터를 사랑한다. 여류작가의 문체는 군더더기가 없어 좋다. 깔끔해서 좋다. 중후한 분위기의 학문적 연륜이 묻어나는 남성작가의 글은 쉽게 말하자면 어렵고 거북하다. 그들은 학문적이고 전문적인 용어들을 아리송하게 엮어 메시지를 꽁꽁 숨긴다. 그리고 그들의 메시지를 풀어 헤치고 그안에 숨은 광대하고 속 깊은 뜻은 작품 해설을 보고 작가의 말을 보며 조금씩 풀이해 가야한다. 소설은 이야기다. 재밌는 이야기. 정이현은 이야기를 참 맛깔스럽게 풀어가는 필력을 가진 작가라는 것을 느꼈다. 구태여 어렵고 난해한 문장과 단어들을 엮기 보다는 사람들의 감정과 이야기에 더 초점을 마추어 준다. 독자로서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최근에 읽은 책중에 가장 재밌었던 책이다. 이 책이 1년 전에 편찬한 책이라는 것을 보면서 2년 전만큼 책을 많이 읽지 않았던 작년을 후회하며 작게 탄식했다. 어떠한 심오한 영향을 받고 독자를 깨우치려 한다기 보다는 이야기를 풀어 그들의 감상에 맡기는 태도가 맘에 드는 책이다. 사실,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직면하는 소설 속의 인물들을 그려내는데는 어떠한 학문적이고 난해한 용어들을 쓸 필요가 없을 지 모른다. 공지영이 그랬고 정이현이 그렇다. 난 여류 작가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그들의 발상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냥... 한동안은 '밍'이란 단어를 떠오를 때면 가슴이 저릿하고 '유지'라는 단어를 접할때면 눈이 시큰할 것 같은 책이다.

 

 


너는 모른다

저자
정이현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12-2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5월의 한강변. 변사체가 떠오른다...달콤한 나의 도시의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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