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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보관소

애월 - 대정 (201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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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염전에서 사진을 찍던 내게 중년의 신사분이 말을 걸어왔다.

혼자 오셨냐는 그분의 물음에 그렇다고 하자 짝하나 붙여줄테니 서로 사진을 찍으며 다니라며 돌염전 너머에서 포즈를 취하던 한 청년을 불렀다.

3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는 그 어른의 말에 부리나케 달려왔고 이친구도 혼자 왔노라며 소개를 해주었다.

청년은 그런 그에게 사장님 저 버리시는 겁니까 하더니 이내 미소를 머금고는 잠시 쉬었다 가자 했다.

 

사장님이라는 중년의 남성은 자신의 아내와 함께 가는데 함께 가기엔 힘에 부쳐 그렇다 설명을 해주고

 

젊은 사람들끼리 먼저 가서 자리 잡으면 저녁에 회를 사주겠다면 우릴 보냈다.

 

 

우리는 아에 서로 카메라를 바꾸어 서로 수시로 찍어주기로 했다. 

 

처음엔 갑작스런 동행에 조금 어색했지만 배에서부터 나를 보았다고 먼저 말씀해 주시며 

 

같이 다니는 부부도 배에서부터 자전거를 싣고 와 알게 됐다며 설명해주었다. 

 

오하마나부터 같은 코스를 왔다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져 선생님이란 호칭을 쓰려다 형님이란 호칭을 썼다.

 

한참을 달리다가 곽지 해수욕장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에 선두에 서던 형님이 어느 작은 포구에 자리를 잡았다.

 

양식을 하는 듯 민물을 흘려 보내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형님은 참지 못하겠다며 옷을 벗어 던지고 그곳에 사는 아이들과 물놀이를 했다.

 

바지가 두개 밖에 없는 난 첫날부터 물에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참으려했지만 못 참고 뛰어들긴 매한가지... 

 

한시간여동안 물놀이를 한 것 같다.

 

* 그때 살짝 무릎 근육이 놀라 한참 다리를 굽히고서야 회복이 되기도 했다.

무리한 운동뒤에 준비운동 없이 물에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다.   

 

 모래사장이 아니라 모래 때문에 골치일 염려도 없었고 민물이 나와 샤워하기에도 안성맞춤.

 

덕분에 조금 지쳤었는데 활기를 얻었다.

 

생각해보니 그때 시각이 1~2시경이었는데 난 한끼도 먹지 않았었다.

 

딱히 돈을 아끼려던건 아녔는데 배가 고프지 않아 의도치 않게 밥도 안먹고 배에서 내리자마자 첫날부터 꽤나 강행군이었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빵을 꺼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 그때 형님은 그전에 잠시 나와 뒤쳐졌었는데 한 스쿠터 여인을 만나 낚시줄을 걸었다고 말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장님 부부도 기다릴겸 형님은 아마 포구에서 그 여성분을 기다린 모양이다.

많이 아쉬워했던 걸로 기억한다. 결국 나와 하루종일 다녔으니...

 

이때 내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던 형님이 내 카메라의 이상을 발견했다.

임시방편으로 고친 렌즈라 그런지 한번 끼워 맞추는건 불가능해 보였다.

형님은 자신의 여분 렌즈를 선뜻 빌려주었다.

 

정말 감사했다.

 

 

 곽지 해수욕장을 그냥 지나치고

 

한림의 협재 해수욕장에 도착!

 

협재 해수욕장은 1박2일덕에 성게국수가 유명했다.

 

꼭 먹고 싶었으나 6,000원의 거금으로 국수 한그릇은 내게 사치였다.

 

백사장에서 말을 태우주는 아저씨는 꽤나 터프했고 그곳의 상점가 사람들 역시 좀 터프한지 해양경찰과 잠깐의 큰소리가 오가는 다툼이 있었는데

 

쌈구경을 하면서 형님과 난 부부를 기다렸다.

 

(제주사람들은 "~마시"를 참 많이 썼다.)

 

한참 시간을 보내도 부부는 보일 생각을 안했다.

 

시간은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다 협재에서 숙박을 할 순 없어 그냥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정.

 

 멋진 풍차와 구름 길들을 지나고 지나 (* 확실히 제주의 서쪽 해안도로 코스는 많이 힘든 코스지만 드라이브코스로는 추천할만한 구간이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고산의 수월봉(차귀낙조)앞에 자리잡은 전망대였다.

 

 

자전거들로 장식을 한 전망대는 일몰을 보는데에 그만인 곳이라면 설명을 해주었던 제주하이킹 사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난 형님에게 사진을 찍자며 섰고 서로를 한참 찍어주었다.

 

혼자서 온 여행이라 내 사진이 참 없을 줄 알았는데 동행 덕분에 넘쳐 났다.

 

일몰시간이 되지 않은 시간이라 전망은 하지 않았지만 허름한 자전거들이 장식하고 수놓은 하늘이 굉장히 멋진 곳이었다.

 

한참을 달리고 또달려

 

해가 늬엿늬엿해졌을 즈음

 

잠시 쉬었다가 지도상으로 인근에 있는 산방산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기로 결정

우리는 숙소를 찾아 다녀야 했다.

 

* 대정의 산방산 게스트 하우스는 지도에는 가까운데 일주도로로 갔을땐 금방이지만 해안도로로 빠지면 송악산과 드라마 촬영장으로 유명한 불난지를 거쳐 용머리미 해얀까지 가야한다. 우리는 잘못해 해안도로로 빠져서 결국 날이 어두워져 산방산까지 못가고 모슬포항의 대정 게스하우스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결국 회를 얻어 먹겠단 우리의 당찬 포부는 물건너 갔고 뜻밖에도 형님은 8천원의 한끼를 부담스러워 하던 내게 저녁을 흔쾌히 사주셔서

 

제주 해물 뚝배기를 밥 두공기와 함께 깨끗하게 해치웠다.

 

그때 서울에 엄청난 비가 왔다는 소식에 조금 걱정이 들었지만 배불리먹은 난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잠을 잔 걸로 기억한다.

 

오하마나-제주시-애월-한림-고산-대정 까지의 섬의 서쪽 코스를 하루만에 달렸다.

 

처음 혼자서 여유를 부리던 오전 때완 달리 동행과 함께한 오후는 확실히 고단한 일정이었다.

 

여행에는 정답이 없다. 마치 인생처럼...

그러고 보면 여행도 인생도 가장 절실한 건 돈이 아니라 용기,

바로 우리가 가진 용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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