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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거짓을 정화시키려는 만배의 진실된 에너지,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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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픈 소설을 읽었다. 꺼림칙하고 거북한 소설을 읽었다. 진실을 읽었다. 내가 "도가니"를 읽고서 지인들에게 했던 말들이다. 공지영의 "도가니"를 다시 읽었다. 작년 여름에 이 책을 읽고 한참 다른 소설을 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도가니가 주는 여운은 쌀쌀한 새벽녘 걷히지 않는 안개처럼 내 마음을 무겁게 가라 앉혔다. 작가 공지영은 이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으로 사회문제를 의식적으로 다루는 여류 소설가로 정평이 나있는 작가이다.

 

그녀의 소설은 중독성이 있다. 우행시를 처음 접했던 것은 영화였다. 영화를 통해 미처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추수리며 책을 읽었다. 문유정투로 말하자면 눈이 많이 아팠다. 같은 글 같은 내용을 5번은 보았다. 도가니를 2번째 펼쳤다. 그녀의 필력에 끌렸다. 사회문제들을 다루는 그녀의 소설이 주는 메시지들에 끌렸다. 워낙에 우행시를 인상 깊게 읽은 터라 굉장히 기대를 많이 했던 그녀의 소설이었다. 그녀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주 짧막한 기사의 한줄을 보고 쓰기 시작했다는 그녀의 소설 "도가니"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떠올리는 짙은 안개와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같은 이름의 가상 도시 무진시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김승옥의 그것과는 다르게 "도가니"의 무진에 퍼져있는 안개는 사람 사이에 인정이 메마른 곳이라기 보단 진실을 은폐하는 힘있는 자들의 무력적인 상징이다. 그곳에 척박한 도시가 뱉어버린 강인호가 온다. 그는 무진으로 흘러들어와, 알선받은 청각장애인학교 '자애학원'의 임시교사로 부임한다. 강인호는  현대 사회에 지친 우리의 모습을 반영해 주는 인물. 그런 그가 자애학원의 임시교사로 부임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점들을 발견한다. 약자를 위해 세워진 장애인 학교라는 곳에서 선생이 아이들을 사정없이 때린다. 교장과 행정실장 두 쌍둥이가 내세우는 엄청난 권위적 질서들이 응당 당연한 것 처럼 행해지고 받아들여진다. 무진에서 강인호가 만난 학교 선배 서유진. 그녀는 인권운동가로서, 자애학원이 숨기고 있는 더럽고 추악한 비리와 이를 묵인하고 감추는 침묵의 안개속에서 맞서 싸우고자 한다. 강인호는 그들에게 다리를 놓아준다. 단순히 묵인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역겨운 그들의 행보. 단지 외지인이라서가 아니었다. 그에겐 책임져야할 가족이 있었고, 표면적으로 잠시 몸을 숙이고 눈과 귀를 막고 있으면 되는 일들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기에 응당 밝혀내야할 불편한 진실에 맞서고 해야할 일들을 행한다. 피해자인 아이들이 성추행에 대해 수화를 통해 입을 열면서 그들의 힘겨운 싸움은 시작된다.

 

싸움은 쉽지 않다. 그들을 도와주어야할 공권력들은 고발 사실을 두고도 서로 책임만 회피한다. 지역의 유지인 교장 형제의 위세가 두렵고, 또한 그들 스스로 이런 골치아픈 일에 관여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안개다. 안개가 상징하는 은폐의 힘. 그 힘들이 무진이라는 작은 사회에 뿌리 깊게 내려 앉아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큰 교회는 성도인 교장 형제를 변호하고 오히려 강인호의 전교조 경력을 내세우며 여론 몰이에 나선다. '침묵의 도가니', 약자의 진실보다 강자의 권리, 당장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침묵의 도가니'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었다.

 

작은 토막기사의 한줄  "집행유예로 석방되어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이 한줄의 울부짖음을 시작으로 공지영은 써내려갔다. 정말 "도가니"를 단 한 줄로 축약한 문장이다. 이 한줄의 이야기를 모토로 이런 이야길 만들어낸 작가의 필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또 그녀가 이러한 소설을 쓰게끔 만들어진 사회에 움추려들고 불쾌하며 불편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리 어두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어둡고 차가운 사회에 치여가는 약자에게 손을 내미는 따뜻한 이들의 이야기다. 적어도 구역질나는 더러운 손길에서 아이들을 구명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며 치유해주는 이야기.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여 이룰 수 있는 최선의 승리로 값진 메시지를 전달하려한다.

 

-우리도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된거요.

 

민수의 말에 끝까지 함께 싸우지 못한 강인호를 원망스러워 하며 호쾌하고 통쾌하지 못한 그들의 승리에 가슴 한켠이 답답하고 시리던 난 서유진처럼 아니 그보다 더 숙연해졌다. 번져버린 검정 잉크의 거짓이란 한 점을 지우기 위해 맞서 싸운 만배의 진실된 에너지가 해낸 작은 결실에 박수를 쳐주었다. 지금도 실제로 사회에 만연하는 음폐와 공작, 비리들. 힘있는 자들이 응당 누려야할 권리라고 착각하는 잘못된 힘들. 그들에게 맞서는 작은 목소리들이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작은 관심과 그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닐까.

 

나의 후대에게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는 사회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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