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실물보관소

2014년 5월 13일, 아웃백 투어 D+5 광산촌 "Coober Pedy" 로의 여정

반응형

2014년 5월 13일,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모래언덕, 갈라진 붉은 땅, 소금호수, 검은 땅 위에 노란 태양 그리고 다시 붉은 하늘…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그리고 잠시 내려 허리를 펴는 와중에도 황량한 사막의 절경을 쉼 없이 쏟아내는 아웃 백은 여행객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꿋꿋이 운전하며 여행객들이 혹시라도 놓칠 자연의 웅장함과 호주의 거대함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가이드 크렉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가만히 차에 타고 움직이는 내가 이렇게 지치는데 운전을 하고 있는 가이드는 얼마나 힘이 들지 상상이 갔다.

차량으로만 8시간 가량을 가야 하는 여정, 바로 호주의 사막 한 가운데이자 광산마을 “쿠퍼페디”로의 여정이 그러했다.

가끔씩 그늘에 앉아 쉴 수 있는 휴게소를 제외하곤 거의 차에만 있었다. 점심 역시 해먹을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아 이미 퀀의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점심용 샌드위치 도시락을 각자 준비하기까지 했다. 일행은 크렉의 신나는 호주 선곡 표에 잠시 신나다가도 다시 불편한 자세로 잠을 청하기를 반복했다.


도착하기 세시간 정도 전에 크렉은 우리가 꼭 봐야 할 영화라며 차에서 영화 한편을 틀어줬다. 

레드독의 한장면

제목은 레드 독. 이미 전 세계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영화인지라 잠을 쫓고 영화에 집중했다. 

호주의 서북부 붉은 대지의 절정이자 유럽, 중국, 미국 할거 없이 전세계의 광부들이 모여들던 70년대 댐피어에서 실제 있었던 충견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의 백구나 일본의 하치이야기와 같은 호주를 대표하는 개와 주인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사실 호주에서 일년을 살면서 늘 아쉬움을 느꼈던 것은 “호주다움”이었다. 그 나라만의 색깔. 호주는 섬이라고 하기엔 너무 넓은 대륙이어서 각 지역마다 다른 기후를 가진다. 그래서 지역이동이 마치 다른 나라를 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할 정도다. 브리즈번에서 멜번으로 이동하는 것만 해도 갑자기 추워진 기후에 당황을 했고 브리즈번에서는 보지 못했던 유럽풍의 트램과 건물양식에 낯 설음도 느꼈다. 

쿠퍼페디에서

사실 호주라는 나라의 짧은 백인역사에서 전통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캥거루나 코알라가 아닌 호주스럽다라고 할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시작으로 결심했던 아웃 백 여행이었다. 

이 영화는 그런 나의 여행에 해답을 제시해 주듯 “호주다움”을 절묘하게 표현해주는 영화였다. 각 나라의 이민자 혹은 노동자들이 만든 생활, 문화 그리고 붉은 대지에서의 이방인들의 삶에서 “우리”라는 개념을 심어준 주인 없는 개, 일명 레드 독이 유일하게 주인으로 생각한 미국인 버스기사 존. 펍에서 노동의 노고를 달래는 광부들이 그 둘의 신묘한 이야기를 추억하며 진행되는 호주의 색깔이 묻어나는 영화였다. 그냥 영화관에서, 방 안에서가 아닌 붉은 대지 위를 달리는 차 안에서 감상한 “레드 독”은 가이드 크렉의 지루할 수 있는 버스여행의 “신의 한 수”이기도 했다.

그렇게 영화의 여운을 가슴에 남기고 있을 때 도착한 광산마을이자 오팔의 산지 쿠퍼패디. 해는 저물고 있었고, 우리는 지금까지의 숙소와는 완전히 다른 지하 굴 백패커에서 짐을 풀고 잠시 쿠퍼패디에서 살아온 어보리진 원주민들과 호주의 보석 오팔박물관에서 처음 원주민을 몰아내고 대륙의 중심에서 오팔을 발견해 큰 광산마을을 만든 백인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비디오 감상과 지하 굴, 일명 “언더그라운드 벙크하우스”의 삶을 고스란히 남겨서 체험하고 견학 할 수 있었다.


견학과 같은 관광을 마치고 쿠퍼패디의 명물이라는 피자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우리는 벙크 하우스 호텔의 지하 굴에 자리한 펍에서 간단히 맥주와 게임을 즐겼다. 다들 비슷한 실력으로 포켓볼을 쳤고 맥주 한잔을 하면서 담소를 나눴다. 이들과 함께하는 술 문화가 좋았다. 모두 술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지만 취하지 않게 마시며 절제했다. 한국에서는 꺼렸던 술자리가 이처럼 즐겁고 여유 있는 술자리 문화로 자리 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루 여정의 히든 카드, 벙크하우스에서의 하룻밤. 춥지도 불편하지도, 무엇보다 파리가 없는 쾌적한 지하 굴에서의 하룻밤은 하루 종일 차 안에서 보낸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