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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보관소

2014년 5월 16일, 아웃백 투어 D+8 본격적인 "Yulara"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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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6일,


울룰루의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난 우리는 밤새 딩고의 울음소리를 들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을 먹었다. 

이야기만 들었지 캠핑의 밤에 울리는 딩고 울음소리를 실제로 들으니 울룰루를 보고 감격스러웠던 저녁과는 반대로 살짝 소름이 돋는 자장가였다. 

울룰루의 일출을 보기 위해 지금껏 여정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사막횡단 여정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앨리스스프링스를 기점으로 하는 2박 3일의 짧은 여정을 선호하는 편이라 여행을 하는 도중 다른 팀을 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역시나 모두가 목표하는 도착지로 와보니 많은 여행객들이 해가 잘 보이는 지점에서 자리를 잡았다. 해가 뜨는 15분 정도의 시간 동안 사람들은 감탄을 하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나 역시 말 없이 일행들과 사진을 수 십장을 찍었다.


본격적인 울룰루 투어에 앞서 선택을 해야 했다. 전날 크렉은 울룰루 산행을 하지 않기를 권유했다. 산행은 울룰루를 훼손하는 일이기에 이를 신성시하는 어보리진들이 늘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고 호주민들도 그를 존중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전 내내 걸어서 울룰루를 한바퀴를 도는 풀 코스와 하프 코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바이크 코스가 있다고 했다. 나는 역시 자전거를 타는 쪽으로 선택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름의 여행메이트인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여행을 마치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았다. 고맙게도 울룰루 관광코스엔 자전거가 옵션으로 있었다. 13명의 일행은 흩어졌다. 몇몇은 걸었고 몇몇은 나와 같이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웅장한 바위산 곳곳엔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어보리진에게 있어 바위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닌 신성한 성지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조나단과 엘리스가 무언의 약속을 깨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팀원들 전부 숨어서 사진을 찍다가 대놓고 찍기 시작했다. 

여행 메이트 샤샤

난 애초의 크렉의 권유에 따라 카메라를 차량에 두고 온 터라 사막의 시원한 바람과 바위산 사이사이에서 불어오는 스산한 기운을 느끼면서 오프로드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그래도 친구들이 찍어주는 사진에 함박 웃음을 보이며 포즈를 취했다. 사실 울룰루의 내부를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럽게 사진을 찍었다고 누군가에게 자랑할만한 것은 안돼 보였다.


그렇게 신나게 달리고 보니 다른 일행들이 이미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자전거를 반납하고 일행과 합류했다. 이번엔 호주 원주민 어보리진이 리드해 울룰루 여기저기를 다니며 원주민들이 생각한 울룰루, 그들의 사상이나 문화, 예술까지 설명하면서 직접 가이드하는 시간이었다. 

사실 많은 팀이 함께 투어에 참가해서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난 울룰루 주변에서 나는 풀들의 쓰임이나 원주민들이 오래 전 그려 넣은 바위산 곳곳에 있는 벽화들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어보리진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일출을 보고 한 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달린 탓에 피로도가 급격하게 몰려왔던 터였다. 그의 억센 영어가 귀에 들어올 리도 없었다. 자리 한 켠에서 스위스에서 온 샤샤의 어깨를 빌려 40분 동안 이어진 가이드의 강의를 자장가 삼아 낮잠을 잤다.


울룰루에서의 경험들은 정말이지 특별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을 배경으로 일몰과 일출을 보고 그곳에서 자전거로 하이킹을 하고 자연의 거대함에 매료되어 한동안 넋을 잃고 쳐다봐도 질리지 않았던 곳. 이후에 두 번째로 찾은 세계의 3대 미항중 하나인 시드니의 그 멋진 건물들의 인위적인 아름다움에선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던 만큼 울룰루 여정은 정말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봐야 할 명소 중에 명소임이 분명하다.


해가 질 때 즈음 마지막 캠프 장소로 향했다. 지금껏 보내온 캠핑 사이트 중에 가장 사막에 가까운 모래밭의 캠핑 사이트이자 열악한 시설이 즐비한 잠자리였다. 마치 그 동안의 캠핑이 이 마지막 밤을 위한 연습이라고 느껴질 만큼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 캠핑 사이트 같았다. 특히 바닥이 전부 붉은 모래 밭이어서 내딛는 발마다 붉게 물드는 것 같았다. 

이번 아웃백 마지막 목적지인 킹스캐년을 목전에 둔 밤이었다.

다들 조금씩 센치해진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앨리스스프링스에서의 하룻밤이 남았지만 어찌되었든 이 멤버로 캠핑을 하는 마지막 밤이었기 때문이었다. 멤버의 대부분이 다윈에서 퍼스로 넘어가는 그야말로 호주 대륙 한 바퀴 여정으로 이어간다고 했다. 시드니로 자유여행을 떠나는 나와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는 앨리스와 다른 여행을 떠나는 줄리와 그리고 가이드 크렉이 앨리스스프링스까지만 함께 하게 될 것이었다. 

우리는 나와 샤샤 그리고 빅터가 피운 모닥불에 쿠퍼패디에서 사두었던 마쉬멜로우를 구워서 초코파이를 만들어 먹으며, 각자가 좋아하는 노래를 배경으로 모닥불에 모두 둘러 누워 딩고의 울음소리와 함께 잠을 청했다. 다른 때와 다르게 잠이 빨리 오지는 않았지만 둥그런 보름달과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호주 대륙 한가운데에 누워서 혀를 내두르며 한참 하늘을 올려다 봤던 여행 첫 날의 밤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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