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7일-18일,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정인 킹스캐년을 오르기 위해 역시나 새벽부터 일어나 정비를 했다.
붉은 모래에 내 신발은 이미 원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게 되어있었다.
촉촉한 새벽 이슬에 살짝 코를 훌쩍이며 고장이 난 샤워기를 붙잡고 샤워를 마친 후 아침을 빠르게 먹고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캄캄한 캠핑사이트를 나섰다.
호주의 그랜드캐년이라고 불리는 킹스캐년은 그랜드캐년과 마찬가지로 바위 계곡이다.
물론 그 규모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가파른 절벽과 굽이굽이 있는 계곡이 뒤지지 않는 절경을 이루는 이곳은 울룰루(에어즈 락)와는 또 다른 의미의 호주에서 손꼽히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역시나 킹스캐년에서의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서두르기는 했지만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뜨는 해를 보는 것은 수포로 돌아갔다. 킹스캐년을 오르고 내리며 크렉의 리드하에 멋진 포토 존을 찾아 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바위 산을 오르는 야생 왈라비(캥거루과의 작은 캥거루)를 보기도 했다.
이곳에서의 절경은 그간 여행의 피로를 모두 풀게 해주었다.
빗물이 고여 만든 킹스캐년 안쪽에 바위들 틈에 있는 큰 호수에서 쿠키를 먹으며 휴식을 취한 뒤 단체 사진을 찍고 가파른 절벽을 배경으로 마지막 기념 사진을 찍었다.
많이 담아두고 두고두고 볼만한 자연의 경치들이 참 많은 여정이었다.
오전에 등산을 모두 마치고 점심은 역시 아침에 미리 싸둔 샌드위치로 해결했고 다시 긴 차량이동이 있었다.
마지막 이동 중에는 호주 배우 휴고위빙 주연의 영화 “프리실라”를 감상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뮤지컬을 하고 있는 작품으로 여장을 하고 무대에 서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데 영화의 마지막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킹스캐년이었다. 이 또한 여행에 참 잘 어울리는 크렉의 한 수였다.
지루할 틈 없이 영화를 모두 보고나니 저녁이 되어 도착한 앨리스스프링스에서 다시 애들레이드 이후로 처음으로 정상적인 백패커에서 묵게 되었다. 그간의 묵은 빨래를 하고 짐을 한번 더 줄이는 작업을 하고서 8시경에 모여 앨리스스프링스의 유명한 펍에서 호주에서 늘 즐겨먹던 레몬 라임 비터를 시켜 피쉬 앤 칩스와 함께 저녁을 먹고, 나의 첫 외국인 여행메이트들과 게임을 즐기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공식적으로 크렉과 함께한 모든 패키지 일정이 종료된 것이다. 이번 호주 현지 패키지 여행을 통해 느낀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이것, 노쇼핑, 노옵션, 노팁, 그저 가이드와 사막횡단을 함께하면서 동행들과 즐기면서 호주의 색깔을 그대로 받아 체험하는 것. 내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여행의 한 표상으로 깊게 자리 잡았다.
여행 이후 시간이 오래 지나도 여정의 짧은 기록과 쪽지만으로도 여행의 모든 과정과 모습이 회자될 수 있는 여행. 온전히 내가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고 체험해야만이 가능한 이 일련의 과정들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여행. 혼자 하는 자유여행으로는 좀처럼 할 수 없는 여정을 숙련된 인솔자와 함께 능동적으로 여행을 함께 하는 것이다. 이는 그간 직간접적으로 봐온 수동적이고 상업적인 한국의 패키지와는 전혀 다른 여행이었다.
내게 있어 여행은 늘 그랬다.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가서 자전거를 타고 일주를 하기도 했고 내일로 티켓을 끊고 직접 가고 싶은 지역을 선정한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무작정 시간이 허락하는 표를 끊고 다녔던 일주일 여정도, 경주에서의 남산 트레킹을 목표로 자전거로 경주시내를 누비던 때도 내게 여행은 단순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나 휴식이 아닌 내가 만든 삶의 일부이자 나만이 온전히 가질 수 있는 경험이기를 바랐다.
그런 나의 바람을 200%충족시켜 준 이번 아웃 백 여행은 앞으로의 나의 여행에 자신감을 준 자산이자 나의 자유를 허락한 내가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함께한 친구들과 작별하고 여남은 자유여행 여정을 위해 시드니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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