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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보관소

경주의 내태 저수지를 지나 나홀로 [증조외할머니 성묘] (201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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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풀고 몸을 가볍게 한뒤 내태리로 올라갔다.

 

 

물론 오직 자전거로 이동했다.

조금은 경주라는 지역을 좁게만 보기도 했다. 매번 차로 다니던 길인지라 자전거로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이다.

 

 

경주는 불국사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유적지와 관광지를 자전거 다닐 수 있을 만큼

그리 넓지 않게 코스들이 인접해있다.

 

도계장삼거리는 시내를 지나 내태 저수지를 향할 때 나오는 익숙한 표지였다.

이를 지나면 동국대를 거점으로 쭉 하천이 이어지는데 시내 안쪽부터 쭉 뻗은 하천이 제법 깨끗하고 크게 조성을 하는 중이었다.

이미 시내 안쪽은 경주 시민들의 조깅코스로 잘 조성이 되어 자전거를 타는 내게도 코스로 안성맞춤이었다.

 

 

 

평생을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셨던 증조할머니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부처님 오신 날이 오기 사흘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인지 1주기 성묘를 가는 길엔 불교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경주에선 이미 초파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원하게 쭉 뻔은 하천과 차로 그리고 사람들의 여유있는 산책로

 

그렇게 하천길을 돌아 영천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밑으로 들어가는 길로 시내를 완전히 벗어나 들어선 모내기를 준비 중한 논밭 그곳에서 노니는 백로가 멋있어 한참을 응시하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그 앞에 오리 역시 자신을 찍어 달라며 자리를 지키는 것 같았다.

 

 

 

 

 

 

몇 마지기의 논밭을 지나면 할머니 생전 항상 아버지와 함께 할머니 댁을 찾아 뵙기 전 장을 보아왔던 농협이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다.

 

 

성묘에 쓰일 소주와 오징어 등을 사고 빈손으로 마을의 어르신들의 댁을 찾아 갈 순 없어 유리병에 담긴 음료를 캔버스 가방에 넣어 다시 출발했다.

갑작스럽게 묵직하고 어깨를 누르는 캔버스 끈에 잠시 후회를 했지만 일단은 저수지까지 페달을 밟기로 했다.

 

몇 개의 갈림과 지그재그의 잘 닦아진 길들을 지나자

한눈에 들어온 내태 저수지

할머니 댁을 도착하기 전 항상 우릴 반기던 저수지

혼자 힘으로 자전거를 타고 오기는 처음이었다.

 

 


큰지도보기

내태저수지 / 저수지

주소
경북 경주시 현곡면 래태리
전화
설명
-

남다른 성취감이 느껴졌다.

온전히 나 혼자만의 힘으로, 나의 경제권으로, 나의 시간관리로 얻은 첫 여행이었다.

 

 

 

그를 위한 목적지로 그냥 경주가 아닌 우리 가족에게만 익숙한 내태리마을, 마을 초입에서 항상  굳건히 자리했던 저수지 앞에 서자 작년 증조외할머니의 임종을 지키며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약속했던 성묘를 혼자서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 내게는 더할나위 없이 뜻깊은 여정임을 실감케 했다.

 

 역전에서 얻은 지도를 펼쳐 한번 더 길을 확인하고 땀을 식힌뒤 다시 페달을 밟았다.

 

 

저수지를 끼고 지그재그로 뻗은 길을 무거운 캐버스 백팩을 메고 내달리니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할머니의 부모님) 모셔져 있는 묘소의 초입에 당도했다.

 

 

경사가 진 좁은 산길을 올라야 하기에 자전거와 등짐을 잠시 함께 걸어두고 오징어와 소주 한병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길을 올랐다.

 

 

 좁은 살길과 산의 들꽃들을 지나고

 

 잠시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위치에서 사진도 찍어가며

 우거진 수풀을 지나

 

몇개의 분묘를 지나고 잠깐 길을 헷갈려 헤매기도 했지만,

 

 

 

 잘 찾았다.

일년만에 찾은 할머니...

할머니께서 몸이 쓰러지시기 전 아버지와 꽤 자주 할머니를 찾아 뵜다.

할머니는 날 잘 못알아 보셨지만 항상 날 보며 하시는 말씀은

254평이었다.

할아버지가 모셔져있는 터가 254평이라는 말씀이었다.

당신도 그곳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있을거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을거다.

그곳에 그렇게 잠들어 계셨다.

 

 5월은 벌초 시즌이 아니라서 벌초 전이었다,

곧 모내기를 끝내고 벌초를 한다고 한다.

술을 잘 못마시는 난 그저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소주를 뿌려드리기만 했다.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1년만에 찾은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며 묘소를 가리키는 나무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작년 봄을 떠올리며 잠시 산에서 눈을 붙였다.

대전에서 동대구를 거쳐 경주를 와 역전에서 게스트하우스로 가서 짐을 풀고 자전거를 타고 내태리 마을에 오는 여정은 그리 녹록치 않은 여정이었다.

잠시 아직은 날이 밝을때 조금 여유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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